국제 연애

국제연애: 영국인 남자친구가 생기다

영국해방이 2023. 8. 27. 22:57

본머스에 첫 발을 딛게 되자, 나는 새로운 삶과 환경에 적응하려 애썼다.

 

홈스테이를 한 달간 경험하고 나서는 생활비 절약을 위해 다른 한국 친구들 세 명과 room share를 시작했다. 그중에 나와 동갑인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성격이 너무 잘 맞아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친구와 나는 영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향한 열망을 공유했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에 큰 흥미를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그 친구는 한껏 꾸민 후 집 근처의 pub에 갔다. 물론 동양여성의 호기심이 있을 수 있다는 그래서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올 영국인 남자들이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갔었다.

 

Pub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시선을 느꼈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도 술 한잔씩 시켜서 우리 테이블에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나를 자꾸 흘끔흘끔 쳐다보는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의 눈동자는 나를 향해 있었지만, 그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친구가 내 친구에게 다가와 앉아도 될까 물어보았다.

 

이때만 해도, 어, 저 친구가 내 친구를 맘에 들었나 보구나, 괜히 내가 오해했네 하면서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내 친구가 앉아도 된다고 하니, 나를 흘끔 쳐다보던 친구를 부르더니 같이 합석을 하게 됐다. 자기 이름이 앤디라고 소개를 하면서 내 이름을 물으니 알려줬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앤디는 딱 보기에도 순하고 숙기가 많아 여자 앞에 숙기가 많아 말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고, 앤디의 친구는 여자들과 잘 대화를 할 줄 아는 남자로 보였다. 앤디 친구와 내 친구의 대화가 보통 이루어졌다. 앤디 친구가 내일 뭐 하냐고 내 친구에게 물어보더니, 넷이서 같이 내일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영어 공부나 하자는 생각에 좋다고 했다. 

 

그다음 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 보니 앤디만 나와 있었다. 앤디 말이 내게 첫눈에 반해서 말을 걸고 싶었는데 수줍어서 말을 못 하고 힐끔힐끔 쳐다보니, 같이 왔던 친구가 나와 맺어주기 위해 내 친구에게 다가갔다는 것, 그렇지만 그게 다였다고. 내 친구에겐 관심이 없었다고.

 

앤디의 말에 살짝 놀랬다. 아! 나였구나, 하며 바람맞은 친구에게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앤디 나이를 물어보니 나와 동갑인 33세이었다. 앤디는 나를 18살로 봤다. 어이가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앤디는 그 뒤로 나를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그는 나에게 진심이였고, 그의 모든 관심은 나만을 향했다.  그의 세심한 배려, 꾸준한 관심, 그리고 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답답하게만 느끼게 했다.

 

영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도 살았던 나라도 아닌 아주 낯선 곳인데 내가 어디가 좋고 뭐가 맛있는지 알리가 없었는데, 앤디는 늘 내게 어디 가고 싶냐, 뭐 먹고 싶냐, 몇 시까지 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게 맞춰줬다. 이런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됐다. 남자로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 

 

앤디의 과도한 배려는 나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의 모든 관심과 애정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의 앤디와의 연애가 지나갔다.

 

이런 내 마음을 흔드는 남자가 나타났다. 지금의 남편 루누. 

 

루누도 앤디처럼 내게 첫눈에 반했다고 나중에 고백을 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영국 시민권자인 그는 앤디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루누는 나에게 영국의 다양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고, 그의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은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떤 분야든 관심을 갖고 아는 지식을 공유할 때면 정말 멋진 남자로 보여 그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루누는 매일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끝나고 나서도,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섬세함과 배려는 나를 더욱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시간은 나의 영국에서의 소중한 추억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